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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맛  카츠오부시

 


카츠오부시를 얇게 저며내기(削り器)

일본에서 여러 해 살다보니, 이제는 "일본의 대표적인 맛"이 뭐냐고 누군가가 물으면, 대뜸 "카츠오부시(かつおぶし, 가다랭이 말린 것)"를 끓여서 만든 국물 맛이라고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그 맛에 입이 길들여졌다.

그러나 1996년 처음으로 여러 일본 음식들을 접하면서 우리와는 어딘가 다른, 약간 신맛이 나면서도 은은하게 구수한 그 맛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194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TV 드라마를 보는데, 여자 주인공이 부엌에 앉아 사각의 나무 통 위에 꼭 빨래방망이 같은 것을 얹어놓고 앞뒤로 서걱서걱 가는 것 같은 움직임을 보였다. 뭐하는 걸까...


얇게 져며진 하나카츠오부시

그리고는 사각 통의 아래 부분에 있는 서랍을 열어 뭔가 부시시한 것을 꺼내 끓는 물에 넣었다. 드라마 장면은 여기서 끝이 났지만 난 너무 궁금했다. 드라마 자체가 당시의 생활상(특히 집안 일)을 자세히 반영했다는 생각이 들어 말도 모르면서 열심히 보긴 했지만, 말 모르는 덕분에 대화 속에 나오는 그런 생활 용어를 하나도 알 수 없었으니 답답... 그래서 다음 날, 부엌과 관련된, 먹는 것에 대해서는 다 있을 만한 대형 슈퍼마켓에 가서 진열대를 돌며 찬찬히 찾아 보았다. '빨래방망이'처럼 생긴 것이 있나 하고... 역시 있었다. 그리고는 그 옆으로 '부시시한 것'도 있었다.

제품의 이름을 보니 빨래방망이는 "혼카레부시(本枯れ節)", 부시시한 것은 "혼부시 하나카츠오(本節 花かつお, 흔히 카츠오부시라고 하는 것)"라고 쓰여 있었다.

보아하니 예전에는 각자의 집에서 혼카레부시를 대패와도 같은 사각의 나무 통(削り器)을 이용해서 부시시하게 저며 내 사용했는데, 이제는 아예 공장에서 갈아서 생산하고 이름을 혼부시 하나카츠오라고 붙여서 파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여자들의 손이 편하게 세상이 바뀌어 간다. 그러나 궁금증은 풀렸지만 선뜻 살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 먹어야 할 지 막막하니...

그 이후로 가끔씩 보는 요리 방송이나 요리책을 뒤적이다 보니 서양 요리나 중국 요리을 제외하고는 거의 "카츠오부시를 끓여 낸 국물 얼마큼을 섞고... 또는 다 만든 음식 위에 보기 좋으라고 카츠오부시를 조금 살짝 얹는다..."는 둥, 아니면 아예 카츠오부시 국물을 섞어서 만든 짠맛이 덜한 간장인 츠유(つゆ)를 여러 음식 만드는 데 편하게 사용한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나라의 기본 맛이 파, 마늘, 고춧가루인데, 일본에서는 카츠오부시 맛이 대부분의 음식 맛의 기본이 되는 것이다. 물론, 카츠오부시 이외에도 국물 맛을 내는 재료로는 마른 멸치, 마른 새우, 고등어를 말려서 얇게 간 것, 다시마, 마른 표고버섯 등이 있지만, 그래도 카츠오부시의 맛이 가장 일반적이어서 간장이나 미소(일본 된장)에도 기본 맛으로 들어가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일본의 여러 음식들을 먹어 보고 만들어 먹게 되면서, 하나카츠오부시(花かつお節)를 사서 국물을 우려내 일본 된장국도 끓여 보고, 그 국물에 간장과 설탕 등을 넣어 조림도 해 보고, 무언가 볶음 요리나 무침 요리에 살짝 넣기도 하여 카츠오부시의 맛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입에 배여 들었다. 그러나 카츠오부시를 볼 적마다 도대체 이것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바다에서 잡아올린 가다랭이 생선을 그냥 햇빛에 말렸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색깔도 다르고 또 나무처럼 단단하고... (우리나라의 무슨 "포" 종류와는 무척 다르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궁금증을 말끔히 씻어줄 정말 귀중한(?) TV의 한 프로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생선인 가츠오(가다랭이)는 주로 일본의 남쪽 바다(태평양)에서 잡아올려진 후, 상하지 않도록 그 지역의 어촌에서 그 날 안으로 여러 처리 작업을 거쳐 최종적으로 "카츠오부시"로 탈바꿈한다. 이 프로에서는 그런 공장을 찾아서 큐슈(九州)의 가고시마현(鹿兒島縣) 마쿠라자키시(枕崎市)의 어느 어촌 마을을 취재하였다. 그리고 이 곳에서 작은 공장을 운영하며 약 40년간 오직 카츠오부시만을 만들어 온 한 사람의 열성을 잔잔하게 보여주었다. 예전에야 이 동네에도 새벽에 잡은 카츠오로 이렇게 사람의 손으로 일일이 작업을 하는 공장이 많이 있었지만, 냉동 카츠오를 이용하여 점점 대형 기계화한 공장이나, 멀리 중국에서 생산해서 들어오는 값싼 제품이 늘어나는 바람에 채산이 안 맞아 문을 닫은 공장이 늘어났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도 제품 하나 하나 보아가며 정성들여 만들어 내는 카츠오부시를 고집하는 이 공장에는 그 맛을 인정한 토쿄(東京)의 고급 음식점에서 주로 주문이 들어온다고 한다.

이 공장의 작업 과정을 보면,

TV프로의 첫 장면. 다 만들어진 "혼카레부시"를 들고 있다.

1. 나마기리(生切り, 身割り) - 갓 잡은 가다랭이 중에서 길이 50cm, 무게 2.5Kg 이상인 것만 뼈를 제하고 모두 네 조각으로
자르다.

2. 카고타테(籠立て) - 네 조각으로 잘려진 가다랭이를 사각의
쇠망으로 된 판에 형태가 흐트러지지 않게 가지런히 옯겨 놓는다.

3. 샤쥬쿠(煮熟) - 말 그대로 가다랭이가 얹혀진 사각 판을
75-85도 정도의 뜨거운 물에 넣고 60-90분 정도 삶는다.
이로 인해 생선의 분해 효소가 사멸되어 부패가 방지된다.

4. 호네누키(骨拔き) - 한 번 삶아진 가다랭이에서 잔 뼈들을
집게로 발라낸다.

5. 세이케이(整形) - 뼈를 다 바르고 나서 표면이 우둘투둘한
곳에는 가다랭이 살을 으깨서 만든 반죽을 발라 모양을 가다듬는다.

6. 바이칸(焙乾) - 커다란 창고 같은 곳에서 1.5m정도의
높이에 쇠망을 깔고 가다랭이를 얹은 후 밑에서 장작을 땐다.
일주일 정도 계속 구우면서 말리는 과정이다. 수시로 불기가
골고루 쬐여지도록 위치를 바꾸어 주어야 한다고 한다.

이렇게 굽고 나면 어느 정도 말라있고 표면에는 장작불 연기의
타르가 많이 붙어있어서 검게 된
가다랭이를 "아라부시(荒節)"이라고 한다.

7. 케즈리(削り) - 빠르게 돌아가는 기계에 표면을 대고 검은
타르만 벗겨낸다.

8. 카비즈케(カビ付け) - 습도 85%, 온도 25-6도 정도의 밀폐된
방에서 가다랭의 표면에  곰팡이가 피도록 한다. 곰팡이가 피면서
'바이칸'에서 빼지 못한 내부의 수분과 특유의 생선 냄새, 그리고 바이칸을 하면서 붙은 타르 냄새 등을 빼 버린다. 처음 곰팡이가 피기까지는 12일 정도 걸리고 그 다음 번부터는 20일 정도 걸린다.

 

 

9. 텐피보시(天日干し) - 곰팡이를 너무 계속 피우면 맛이
안 좋아지기 때문에 일단 며칠 햇빛을 쬐여 곰팡이의 성장을
멈춘다. 그리고 다시 곰팡이를 피우고, 또 햇빛에 쬐고...
이런 작업을 4-5회 정도 반복한다.

이런 전체 과정이 약 반년에 걸쳐 다 끝나면 가다랭이는 딱딱하게
굳어 있다. 표면에 낀 곰팡이를 털어내고 진공 포장을 해서 출하.

이런 전체 공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건조식품을 "후시(부시, 節)"라고 한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나라시대(奈良時代 710-784)의 문헌에 그냥 햇빛에 말린 가다랭이가 있다는 말이 있지만 당시의 제품은 이런 "후시"라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장작불에 구우면서 말리는 것이 특징이기 때문이다. 이런 방법은 1670년 경쯤에 현재의 오사카 남쪽에 있는 와카야마현(和歌山縣)에서 시작되고, 1760년(江戶時代 中期)경에 그 방식이 완성되어 보존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제품이 전국으로 퍼졌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고급 식재료이기 때문에 한정된 사람들만 그 맛을 즐길 수 있었다. 이런 "후시"에는 가다랭이를 이용한 카츠오부시(かつおぶし), 고등어인 사바부시(さばぶし), 참치인 마구로부시(まぐろぶし) 등이 있다.

그리고 카츠오부시 중에서도 여러 이름이 있는데, 가다랭이의 길이가 50cm, 무게가 2.5Kg이상인 것으로만 위의 공정대로 만든 것은 혼부시(本節) 또는 혼카레부시(本枯れ節)라고 한다. 그러나 이보다 작은 것으로 만든 것은 카메부시(龜節)이라고 한다.

이런 딱딱한 덩어리를 얇게 저며 흔히 말하는 부시시한 "카츠오부시"로 만들어 상품화하는데, 주로 세 종류로 나뉜다. 좀 두껍게 저민 것은 아츠케즈리(厚削り), 본문의 맨 위에 있는 것과 같은 정도의 것은 하나카츠오(花かつお), 그리고 더 작게 말린 듯이 된 것은 모미하나카츠오(もみ花かつお)라고 한다. 아츠케즈리와 하나카츠오는 주로 국물을 우려내기에만 사용하고 반찬 위에 살짝 뿌리는 것으로는 모미하나카츠오를 사용한다.

국물을 우려내는 카츠오부시도 엄밀히 따지면 공정의 차이로 인해 두 종류로 나누어진다. 장작불에 구워 말린 것을 타르를 털어내면 아라부시(荒節)라고 하는데, 이것을 저며내면 카츠오케즈리부시(かつお削り節)라고 하여 끓이면 향과 맛이 강한 국물이 된다. 주로 간사이(關西) 지방의 취향이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곰팡이를 피워서 말린 혼카레부시(本枯れ節)를 저며서 만든 카츠오후시케즈리부시(かつおふし削り節)는 타르나 생선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 일본인들의 표현대로 말하면, "죠힝나아지(上品な味)"라고 할 수 있는 옅은 향기의 부드럽고 담백한 맛을 지녀서 주로 토쿄(東京) 등지에서 많이 찾는다고 한다.

이렇게 써 놓고 보면, 처음 카츠오부시를 접하는 사람들이 왠지 일본의 대표 도시인 토쿄 사람들 취향을 좇아가야 뭔가 기품있는 맛을 아는 것처럼 생색을 낼 수 있지 않는가 하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나뉘어진 이유는 단순히 상품의 이동 거리 때문이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없다. 지금과 같이 빠른 교통 수단이 없던 1700년대에, 간사이 지방은 카츠오부시의 생산 지역과 가깝기 때문에 장작불에 구워 말린 제품이 달리 변질하지 않은 채 도착할 수 있어서 당연히 그 상태의 카츠오부시 맛을 익히게 된 것이다. 한편, 토쿄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리다 보니 가는 도중에 변질되는, 즉 곰팡이가 피게 되었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인지, 곰팡이는 피어도 맛이 부드럽게 되고 보니 사람들이 이런 카츠오부시 맛에 길들여진 것이다. 그러나 토쿄가 권력의 중심에 있다 보니 "토쿄의 맛"이 꼭 "일본의 맛"인 양 비춰지게 되었다.

그렇지만 여러 종류의 카츠오부시가 있고, 여러 종류의 맛을 낸다 해도, 뼈속까지 써늘한 겨울에 카츠오부시 우려낸 국물로 만든 뜨겁고도 시원한(?) 우동 한 그릇 먹고 나면, 땀이 주욱 나면서 별 다른 생각이 안난다. 어느새 따뜻한 겨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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